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대 이집트 (문단 편집) === [[프톨레마이오스 왕조]] ([[이집트 제32왕조]]) =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cleopatra-thomas-francis-dicksee.jpg|height=350]]}}}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1200px-Castro_Battle_of_Actium.jpg|height=350]]}}} || || '''{{{#A0522D [[클레오파트라 7세|{{{#A0522D 클레오파트라}}}]]}}}''' || '''{{{#A0522D [[악티움 해전|{{{#A0522D 악티움 해전}}}]]}}}''' ||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오리엔트의 패자로 등극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. 대왕이 붕어하자 그의 신하들이 제국을 나누어 가졌는데, 그중 이집트 지방은 [[프톨레마이오스 1세]]가 차지했다.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기원전 304년 [[프톨레마이오스 왕조]][* 혹자는 지도자를 [[파라오]]라 칭한 최후의 왕조라는 점에서 '제32왕조'라고도 한다.]를 건국했고, 이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약 300년 정도 이집트를 통치했다.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을 회복하겠다는 야심 따위는 갖고 있지 않았고, 오히려 부유한 이집트를 제대로 꽉 잡고 가기만을 원했다. 이집트에만 집중했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정책은 그대로 적중했고 그의 후계자 [[프톨레마이오스 2세]], [[프톨레마이오스 3세]]는 경제를 발전시키며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. 특히 프톨레마이오스 3세 시대에는 [[셀레우코스 왕조]]를 [[바빌론]]까지 밀어붙이는 기염을 토하며 지중해 세계의 최강자로 군림하는 영광을 누렸다. 그러나 [[프톨레마이오스 4세]] 시절부터 점차 국력이 약해지기 시작하더니 셀레우코스 왕조에게 [[시리아]], [[팔레스타인]], [[레반트]] 지방을 연달아 상실하며 쇠락했다.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신흥 강대국 [[로마 공화정|로마]]의 힘을 빌어 목숨은 보전했으나 날로 상황은 악화되었고, 결국 최후의 파라오 [[클레오파트라]]가[* 엄밀히 말하면 최후의 파라오는 [[카이사르]]와 클레오파트라의 아들이자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공동 파라오였던 [[카이사리온]]이었다. 그러나 카이사리온은 독립적으로 재위하지도 못했으며 그마저도 클레오파트라 사후 쫒겨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더 임팩트가 강렬한 클레오파트라를 보편적인 마지막 파라오로 본다.] [[악티움 해전]]에서 [[옥타비아누스]]가 이끌던 [[로마군|로마 해군]]에 대패하며 멸망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